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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반성규수 작성일26-03-17 14:42 조회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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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철 화가가 전시장에서 최근 그린 인물 소묘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현장에서 스케치한 그림이 가장 생명력이 있어요. 뒤에 그걸 크게 그리거나 색을 넣고 다듬어도 첫 느낌이 살지 않아요. 현장감을 내려고 공연히 그림만 두꺼워지죠. 그러니 실제 얼굴을 보면 얼마나 좋겠어요.”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에서 오는 29일까지 초대전 ‘응시, 형상 너머’를 여는 권순철(82) 화가의 말이다.
19 릴박스 89년부터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창작 활동을 해온 그가 한국인의 얼굴을 화폭에 옮기기 시작한 때는 서울대 미대 신입생이던 1964년이었다. 한-일 협정 반대 시위가 대학가를 휩쓸고 1960년 4·19 이후 우리 것에 대한 자각이 분출하던 시기였다.
서양 조각인 비너스 석고상을 놓고 그림을 그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한국 사람의 얼 야마토무료게임 굴을 직접 보고 그리겠다며 스케치북을 들고 서울역 등을 찾았다. 동대문이나 청량리 시장 그리고 갓 상경한 시골 어르신이 많은 서울대병원 대기실도 자주 들렀다.
여든이 넘은 지금도 그는 서울 종묘 앞이나 낙원동 골목을 자주 간다. “다른 일을 보다가도 일부러 낙원동 골목을 찾아 두세 시간 그립니다. 거기에는 온갖 노인들이 다 있어요. 마음이 바다이야기디시 좋지 않을 때 종묘에서 스케치하면 풀립니다.”
현장에서 그는 ‘피사체’로부터 10여미터 이상 떨어져 그린다. 차에서 작업하기도 한다.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 종묘에서 그리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요. 저 사람 또 나왔구나, 하죠.”
이번 전시는 작가의 생애 작업을 압축해 보여주는 아카이브 전으로, 1990년대 파리에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서 한지에 그린 대형 작품을 비롯해 최근 거리에서 스케치한 ‘노래하는 할머니’ 소묘까지 다양한 형태의 한국인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지난 6일 전시장에서 작가를 만났다.
권순철 화가가 파리에서 한지 위에 그린 한국인 얼굴들.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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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62년 전 한국인 얼굴을 처음 그렸을 때 먼저 떠올린 형상은 어린 시절 경북 상주 외갓집에서 만난 나무꾼과 농민이었단다. 한국전쟁 초기 ‘보도연맹 사건’으로 부친을 잃은 그는 초등 2학년부터 중학교 졸업까지 홀어머니와 상주에서 살았다.
“(상주에서) 집집마다 땔감을 배달하는 나무꾼이나 농민들 얼굴을 매일 보고 살았어요. 대학 가니 이 얼굴들이 계속 떠오르더군요.”
뒤로 “한국인의 좋은 얼굴”이 그의 스케치북에 차곡차곡 쌓였다. 특히 좋았던 얼굴 하나를 들려줬다. “70년대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본 할아버지입니다. 서울 자녀 집을 찾아 상경한 분이었어요. 주름이 많은 얼굴인데, 좌중을 압도하는 위엄이 있었죠. 시골 분이 도시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고요. 감히 범접하기 힘든 얼굴이었죠. 이분을 보며 한국을 대표할 만한 얼굴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좋은 얼굴을 찾고 환호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던 순간도 있다. “70년대에 청량리 농산물시장을 가면 할머니들이 농산물 찌꺼기를 모아 둔 곳에서 파나 배추를 다시 추려 대야에 놓고 팔았어요. 추운데 얇은 양말에…. 마음이 아팠죠. 60년대 서울역에서는 밤늦게 공안원들이 추위를 피해 들어와 웅크리고 있는 노숙자들을 쫓아내고, 동대문시장에선 행상 할머니들이 경비원에게 혼나시기도 했죠.”
그는 한국인의 좋은 얼굴을 이렇게 말했다. “일제 침략과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큰 고통을 이겨내고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 자녀를 잘 키워낸 분들의 얼굴이죠. 우리나라가 역경이 얼마나 많았어요. 그런 것을 온몸으로 겪어낸 분들이죠. 그 시간이 함축된 얼굴입니다.”
그는 한국인 얼굴을 학술적으로 고찰하기도 했다. 모교 대학원에서 ‘한국미술에 나타난 얼굴 형태에 관한 고찰’(1984)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이나 몽골인은 얼굴이 넓고 길이가 짧아요. 광대뼈가 두드러지죠. 서양인은 긴 얼굴에 옆에서 보면 넓고요.” 그는 이어 학교나 학원에서 하는 비너스 석고상 수업이 자칫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비너스는 한국인 기본 얼굴이 아닌데 자꾸 그리다 보면 손과 눈에 익어 한국인 얼굴도 그렇게 그릴 수 있어요. 실제 모델을 그리면서도 틀린 형태나 뼈대가 나올 수 있어요.”
그는 불상에서도 한국인 얼굴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우리 불상은 서양은 물론 중국 일본과도 달라요. 일본 불상은 약간 잔인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중국은 얼굴 과장이 심한 편이죠. 우리 불상은 너그럽고 풍성해요. 품위가 있죠.”
그가 40대 중반이던 1989년에 프랑스 파리로 떠난 데도 한국인 얼굴에 나타난 정신성과 그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단다. “서양에서는 ‘모나리자’만 한 얼굴이 없다고 하지만 한국적인 얼굴도 잘해서 내놓으면 모나리자만큼 가치가 클 것이다고 생각해 한국인 얼굴을 파리에서도 계속 그렸죠.”
권 화가가 지난 2월 종묘에서 그린 소묘. 작가 제공
파리 체류 3년째인 1991년 그곳 한국인 화가들과 함께 ‘소나무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지내고 별도의 회원 창작 공간도 마련한 그는 지금도 파리에 화실을 두고 매년 한두차례 찾는다. 1992년엔 제4회 이중섭미술상을 받았다.
그는 1970~80년대 민중미술 진영 화가들과 뜻을 같이하면서도 활동에서는 한 발 비켜 서 있었다. 여기엔 가족사 영향이 있다.
일본 유학파인 그의 부친(권경우)은 한국전쟁 개전 2개월 뒤 경찰에 체포되어 학살당했다. 당시 부산 조흥은행 직원이었다. “아버지 행방을 알려고 어머니와 부산형무소를 몇차례 찾았어요. 형무소 앞에서 죄수 호송 차량이 드나들 때마다 어머니가 제 이름을 부르기도 했죠. 그 소리에 아버지가 고개를 들고 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요.”
춤 재능에 얼굴도 예뻤던 그의 모친(김재호)은 26살에 남편을 잃고 74년을 홀로 산 뒤 2년 전 별세했다.
“어머니가 초등생일 때 공연을 위해 상주에 온 무용수 최승희 앞에서 춤을 추고는 ‘재능이 있다. 초등학교 졸업 뒤 서울에서 나한테 배워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해요. 외조부 반대로 실현되지는 못했죠. 외조부 가세가 넉넉했지만 서울에 가면 춤꾼이 될지 모른다면서 아예 서울 유학을 막으셨다고 해요. 어머니는 남편 트라우마 때문에 두 아들에게 ‘절대 앞에 나서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하셨어요.”
그간 그린 한국인의 얼굴 중 대표작 하나를 꼽아달라고 하자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자신 있는 게 없어요. 하긴 한다고 했는데…. 앞으로 정말 해야죠.” 이어 말했다. “앞으로도 한국인 얼굴을 잘 표현해 우리 역사와 거기 담긴 정신을 알리고 싶어요. 우린 침략한 일도 별로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잖아요. 이런 역사의 정신이 축적된 얼굴을 그려보고 싶어요.”
그는 앞으로 역사적인 인물도 그려보고 싶다며 신사임당 이야기를 했다. “한국의 아름다운 여성을 대표하는 신사임당 얼굴로 모나리자를 내세우는 서양 사람들에게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부각해 보고 싶어요. 자료가 없어 (그리는 데) 어려움은 있지만요.”
권 화가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떠올리며 그린 전시작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그가 60여년 전에 생각한 좋은 얼굴에 대한 기준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런 얼굴을 찾기가 요즘 더 어려워졌을까, 묻자 그는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자본주의의 어떤 나쁜 정서에 물들었다고 할까요. 예전에는 성실하게 노력하고 애쓰는 게 있었는데요. 지금은 조금 느슨해졌다고 할까요. 노인들도 몇십 년 전 본 분들과 달라요. 그때는 어려워도 조금 여유가 있었는데요. 전반적으로 생활이 나아지니까…. 요즘 몽골 사람들을 보면 얼굴이 착해 보이고 그런 게 있어요. 예전에 한국에서 많이 본 순수하고 그런 모습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좋은 그림’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요즘 보면 그림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림을 가볍게 생각해요. 한국에서 인류 문화의 큰길을 열 수 있는 자극을 주는 그림이 나오면 좋겠어요.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예술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런 예술이 나오면 한국인의 삶과 한국인 운명 개척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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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스케치한 그림이 가장 생명력이 있어요. 뒤에 그걸 크게 그리거나 색을 넣고 다듬어도 첫 느낌이 살지 않아요. 현장감을 내려고 공연히 그림만 두꺼워지죠. 그러니 실제 얼굴을 보면 얼마나 좋겠어요.”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에서 오는 29일까지 초대전 ‘응시, 형상 너머’를 여는 권순철(82) 화가의 말이다.
19 릴박스 89년부터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창작 활동을 해온 그가 한국인의 얼굴을 화폭에 옮기기 시작한 때는 서울대 미대 신입생이던 1964년이었다. 한-일 협정 반대 시위가 대학가를 휩쓸고 1960년 4·19 이후 우리 것에 대한 자각이 분출하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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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그는 ‘피사체’로부터 10여미터 이상 떨어져 그린다. 차에서 작업하기도 한다.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 종묘에서 그리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요. 저 사람 또 나왔구나, 하죠.”
이번 전시는 작가의 생애 작업을 압축해 보여주는 아카이브 전으로, 1990년대 파리에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서 한지에 그린 대형 작품을 비롯해 최근 거리에서 스케치한 ‘노래하는 할머니’ 소묘까지 다양한 형태의 한국인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지난 6일 전시장에서 작가를 만났다.
권순철 화가가 파리에서 한지 위에 그린 한국인 얼굴들.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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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에서) 집집마다 땔감을 배달하는 나무꾼이나 농민들 얼굴을 매일 보고 살았어요. 대학 가니 이 얼굴들이 계속 떠오르더군요.”
뒤로 “한국인의 좋은 얼굴”이 그의 스케치북에 차곡차곡 쌓였다. 특히 좋았던 얼굴 하나를 들려줬다. “70년대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본 할아버지입니다. 서울 자녀 집을 찾아 상경한 분이었어요. 주름이 많은 얼굴인데, 좌중을 압도하는 위엄이 있었죠. 시골 분이 도시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고요. 감히 범접하기 힘든 얼굴이었죠. 이분을 보며 한국을 대표할 만한 얼굴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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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인의 좋은 얼굴을 이렇게 말했다. “일제 침략과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큰 고통을 이겨내고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 자녀를 잘 키워낸 분들의 얼굴이죠. 우리나라가 역경이 얼마나 많았어요. 그런 것을 온몸으로 겪어낸 분들이죠. 그 시간이 함축된 얼굴입니다.”
그는 한국인 얼굴을 학술적으로 고찰하기도 했다. 모교 대학원에서 ‘한국미술에 나타난 얼굴 형태에 관한 고찰’(1984)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이나 몽골인은 얼굴이 넓고 길이가 짧아요. 광대뼈가 두드러지죠. 서양인은 긴 얼굴에 옆에서 보면 넓고요.” 그는 이어 학교나 학원에서 하는 비너스 석고상 수업이 자칫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비너스는 한국인 기본 얼굴이 아닌데 자꾸 그리다 보면 손과 눈에 익어 한국인 얼굴도 그렇게 그릴 수 있어요. 실제 모델을 그리면서도 틀린 형태나 뼈대가 나올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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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70~80년대 민중미술 진영 화가들과 뜻을 같이하면서도 활동에서는 한 발 비켜 서 있었다. 여기엔 가족사 영향이 있다.
일본 유학파인 그의 부친(권경우)은 한국전쟁 개전 2개월 뒤 경찰에 체포되어 학살당했다. 당시 부산 조흥은행 직원이었다. “아버지 행방을 알려고 어머니와 부산형무소를 몇차례 찾았어요. 형무소 앞에서 죄수 호송 차량이 드나들 때마다 어머니가 제 이름을 부르기도 했죠. 그 소리에 아버지가 고개를 들고 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요.”
춤 재능에 얼굴도 예뻤던 그의 모친(김재호)은 26살에 남편을 잃고 74년을 홀로 산 뒤 2년 전 별세했다.
“어머니가 초등생일 때 공연을 위해 상주에 온 무용수 최승희 앞에서 춤을 추고는 ‘재능이 있다. 초등학교 졸업 뒤 서울에서 나한테 배워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해요. 외조부 반대로 실현되지는 못했죠. 외조부 가세가 넉넉했지만 서울에 가면 춤꾼이 될지 모른다면서 아예 서울 유학을 막으셨다고 해요. 어머니는 남편 트라우마 때문에 두 아들에게 ‘절대 앞에 나서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하셨어요.”
그간 그린 한국인의 얼굴 중 대표작 하나를 꼽아달라고 하자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자신 있는 게 없어요. 하긴 한다고 했는데…. 앞으로 정말 해야죠.” 이어 말했다. “앞으로도 한국인 얼굴을 잘 표현해 우리 역사와 거기 담긴 정신을 알리고 싶어요. 우린 침략한 일도 별로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잖아요. 이런 역사의 정신이 축적된 얼굴을 그려보고 싶어요.”
그는 앞으로 역사적인 인물도 그려보고 싶다며 신사임당 이야기를 했다. “한국의 아름다운 여성을 대표하는 신사임당 얼굴로 모나리자를 내세우는 서양 사람들에게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부각해 보고 싶어요. 자료가 없어 (그리는 데) 어려움은 있지만요.”
권 화가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떠올리며 그린 전시작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그가 60여년 전에 생각한 좋은 얼굴에 대한 기준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런 얼굴을 찾기가 요즘 더 어려워졌을까, 묻자 그는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자본주의의 어떤 나쁜 정서에 물들었다고 할까요. 예전에는 성실하게 노력하고 애쓰는 게 있었는데요. 지금은 조금 느슨해졌다고 할까요. 노인들도 몇십 년 전 본 분들과 달라요. 그때는 어려워도 조금 여유가 있었는데요. 전반적으로 생활이 나아지니까…. 요즘 몽골 사람들을 보면 얼굴이 착해 보이고 그런 게 있어요. 예전에 한국에서 많이 본 순수하고 그런 모습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좋은 그림’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요즘 보면 그림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림을 가볍게 생각해요. 한국에서 인류 문화의 큰길을 열 수 있는 자극을 주는 그림이 나오면 좋겠어요.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예술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런 예술이 나오면 한국인의 삶과 한국인 운명 개척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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